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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적 과학의 범위에서 우주는 팽창우주의 이론을 주장하며 보편적으로 연구, 발전하고 있다. 하지만, 결코 팽창우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우주의 신비가 있음을 인지하고 있는 바이다.
먼저, 언어적으로 우주는 universe이다. 이는 고대의 프랑스어 universe에서 파생되어, 또한 라틴어 universum에서도 파생되었다. 흔히 물리학에서 말하는 우주가 바로 이것이다.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이 세계를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우주의 또 다른 것은 cosmos이다. 이는 질서 있는 세계를 나타내는 그리스어로 그 반대말은 성경에서 나타난 세상이 창조되기 전의 혼돈을 나타내는 caos가 있다. 이 코스모스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가치적인 관점에서의 정돈, 질서를 의미하기도 한다. 이것은 작은 지구와 대비되는 광대하고 신비로운 우주를 말하는 데 쓰인다.
모든 물질과 복사를 포함하는 공간과 시간의 전체를 우리는 우주라고 한다. 우주라는 말은 시공을 뜻할 때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 · 공간 · 시간을 포괄하고 지구 밖의 공간을 뜻할 때는 지구를 둘러싼 원우주를 가리킨다.
우주에 관한 최근에 관심은 시공의 구조가 밝혀지면서 아직도 해명되지 않은 부분에 대한 것들도 여전히 존재한다.
① 팽창우주의 발견 이전 : 중세 유럽까지의 우주관은 그리스에서 유래된 우주의 개념을 가졌다.
그 당시는 태양과 태양계의 규칙적인 운행을 이해하기 위해서 지구를 중심으로 천구와 주천원의 유한적인 우주를 언급했다.
16세기 중엽, 천체 운행의 규칙성을 바탕으로 N.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모형(太陽中心模型)은 17세기에서 18세기를 지나오며 G. 갈릴레이, I. 뉴턴에 의해 천체의 운동을 지상의 운동법칙과 동일한 법칙으로 설명하여 근대과학을 크게 발전시켰다.
이에 따라, 태양을 중심으로 행성이 회전하는 태양계가 사람들에게 인식되기 시작되었으며, 항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서 사람들의 시야는 태양계에서 더 넓은 우주 세계로 확대, 발전되었다.
18세기 말에 F. W. 허셜에 의해 비롯된 항성계의 연구와 관측의 진보 속에서 광대한 우주공간에는 우리가 속하는 은하계와 똑같은 은하가 무수히 존재한다는 존재성을 상상할 수 있게 되었다.
② 팽창우주와 우주흑체복사(宇宙黑體輻射)의 발견 : 20세기에 이르러서 광대한 우주에 산재하는 은하까지의 거리를 실제로 측정하여 은하계 외 공간의 넓이를 알게 되었다.
1929년, 멀리 있는 은하의 거리를 측정할 수 있게 된 얼마 후에 팽창하는 우주를 E. P. 허블에 의해서 발견되었다.
또한, 은하로부터의 빛의 스펙트럼선에 의한 적색이동(도플러 효과로 빛의 파장이 길어지는 것)의 관측으로 먼 곳의 은하는 그 거리에 비례하는 속도로 우리로부터 후퇴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리고 65년에는 미국의 두 물리학자 A. A. 펜지어스와 R. W. 윌슨이 천공에서 등방적, 균일적으로 입사되는 마이크로파를 관측했으며 이것으로 과거의 우주는 우주흑체복사가 충만해 있을 정도로 고밀도였다는 것이 직접적으로 확인되었다.
③ 현대의 우주상 : 이 팽창우주와 우주흑체복사라는 관측상의 두 가지 발견을 기초로 현대의 우주상은 팽창우주론 또는 대폭발설을 주장한다.
이 우주론에 의하면 현재의 이 우주는 백수십억년 전에 대폭발을 일으켜, 그 폭발의 여파로서 지금도 팽창을 계속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은 팽창하는 거대한 우주의 한계를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가설로만 남아있는 것이다.
현재의 우주의 크기는 명확하지 못하며, 과학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우주는 1,000억 개 이상의 은하를 포함하는 100억 광년의 공간적 범위를 가지며, 과거 100억년간에 걸친 시간의 범위내에서는 팽창을 계속하고 있다고 한다.
이 거대한 우주를 설명한다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 싶다. 지금도 많은 과학자는 우주의 무한한 범위를 증명하는 과학적, 시각적, 공간적인 설명을 뚜렷하게 하고자 수많은 연구 결과를 내보내고 있다.
먼저 언급한 cosmos의 우주의 개념과는 조금 거리가 먼 듯 증명하려는 움직임이 있지만, 이 증명의 결과로는 우주는 결코 혼돈, 무질서하지 않다는 것을 수많은 과학자는 더 깨닫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우주는 광대하지만, 그 안에서 분명 정돈된 질서를 추구하고 있다. 마치 우리가 보고 느끼고 들을 수 있는 육체가 신비하지만 질서 있게 존재하는 것처럼 말이다.